조명 끈 채 더듬거리며 식사… 적외선안경 쓴 종업원 서빙 "안보이면 미각 더 예민해져"
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. 종업원들이 요리를 내오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.
더듬더듬 칼과 포크를 들고 접시를 만져 위치를 확인하고 조심조심 한입 베어먹는다.
후루룩, 쩝쩝 소리만 주변을 울릴 뿐 누가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.
이곳은 '블라인드 레스토랑(Blind Restaurant)'. 이름 그대로 '암흑 식당'이다. 조명을 모두 끄고 빛을 차단한 채 식사를 하는 독특한 장소다. 지하철 건대입구역에서 어린이대공원역 쪽으로 100여m 가다 보면 왼편에 상가가 죽 이어진 중간에 있다.
▲ 18일 오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학교 인근 레스토랑‘블라인드’에서 적외선 고글을 쓴
직원이 음식을 나르고 있다. 이 레스토랑에서는 손님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식사를
한다. /이준헌 객원기자 heon@chosun.com
직원이 음식을 나르고 있다. 이 레스토랑에서는 손님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식사를
한다. /이준헌 객원기자 heon@chosun.com
종업원들은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특수 적외선 안경을 쓰고 있다. 종업원들이 대기실에 있는 손님들을 한 줄로 세워 앞사람 어깨에 손을 얹게 한 채 천천히 어둠을 헤치고 자리로 안내한다. 화장실도 입장 전 미리 다녀오라고 당부한다. 식사 중 화장실 한 번 가려면 다시 종업원 손잡고 느릿느릿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.
일단 인터넷(i40.kr)이나 전화(02-497-5248)로 예약을 하고 오후 7시와 9시 두 차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한꺼번에 들어간다. 입장 전 빛이 샐 수 있는 휴대전화, MP3플레이어, 카메라, 시계, 라이터 등은 모두 사물함에 맡긴다.
식사는 두 가지 코스요리로 전채부터 본요리까지 주로 파스타나 스테이크 같은 양식이다.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입에 넣어야 한다. 종업원들이 도움을 주긴 하지만 서둘러 하려다간 옷에 떨어뜨리기 일쑤. 유승훈(30) 대표는 "레드 와인을 흰 와이셔츠에 다 쏟은 손님이 있어 그 뒤론 주로 화이트 와인을 많이 권한다"고 했다.
식사하는 동안 어둠 속에서 소리로 듣는 이야기가 스피커를 통해 펼쳐진다. '새로운 세상', '심해탐험', '우주여행', '타임머신' 등 다양한 주제로 몽환(夢幻)적인 효과음과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.
식사시간은 1시간30분. 이색적인 체험을 마친 손님들은 저마다 '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감동의 순간', '내 안의 모든 감각이 춤을 추는 이 공간, 시간 기억할 것이다. 머리가 아닌 느낌이', '시각 장애인을 도우며 살려는 꿈을 가진 우리 부부에게 아주 특별하고 신기했던 시간' 등 다양한 반응을 홈페이지에 올린다.
유 대표는 우연히 TV에서 본 스위스 블라인드 레스토랑에서 착안했다고 한다. 시력이 좋지 않아 애를 먹었던 청소년기 기억도 '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식사하면 어떤 느낌일까'라는 상상력을 자극했다.
2007년 문을 연 뒤 유명 운동선수, 배우, 외국인 관광객, 시각·청각 장애인과 지방에서도 많이 찾고 있다. 유 대표는 "앞이 안 보이기 때문에 맛이나 냄새, 소리를 통해 느끼는 감각이 더 강렬해진다"며 "소리로 듣는 영화를 만들어보려 한다"고 말했다.
* 기사출처: 조선일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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